Post

미래 사회에서 양자컴퓨터의 역할과 해결해야 할 과제

양자컴퓨터의 기본 개념과 고전적인 컴퓨터 대비 가지는 장점, 미래에 기대되는 역할에 대해 알아보고, 한국에서 양자컴퓨터 시대에 미리 대비해야 할 필요성을 고찰한다. 이 글은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작성했던 에세이이다.

1960년대부터 지난 수십 년 간 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다. 이러한 발전은 컴퓨터의 처리장치 안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라는 부품들을 소형화하여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수를 집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컴퓨터의 성능 발전 속도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최신형 스마트폰은 1990년대에 가장 강력했던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분야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컴퓨터의 성능은 현대 사회의 전반적인 기술 발달 속도를 좌지우지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문제는, 트랜지스터 하나하나의 크기가 극도로 작아지면서 이와 같은 방식의 컴퓨터 연산 능력 향상이 이제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양자컴퓨터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 글에서는 양자컴퓨터의 특성과 기존 컴퓨터 대비 가지는 장점, 그리고 미래사회에서 기대되는 역할과 이를 위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양자 컴퓨터는 얽힘(entanglement), 중첩(superposition) 등의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자료를 처리하는 컴퓨터로, 1982년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양자컴퓨터의 고유한 특성은 정보를 큐비트(양자비트) 단위로 읽는다는 점이다. 기존 컴퓨터가 사용하는 비트가 0 또는 1이라는 하나의 값을 가지는 것과 달리 큐비트는 양자 중첩 현상을 이용하여 0과 1의 값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사용하는 큐비트의 수가 n개일 경우 이론적으로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2^n가지가 되며, 이러한 큐비트의 특성 덕분에 양자컴퓨터는 데이터의 병렬 처리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미래 사회에서 양자컴퓨터의 활용 방안을 논하기에 앞서, 양자컴퓨터는 그 동작 원리가 기존의 컴퓨터와 전혀 다르므로 상용화된다 해도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양자컴퓨터와 기존 컴퓨터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단순히 큐비트가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가 아니다. 양자컴퓨터를 기존의 컴퓨터와 차별화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양자컴퓨터가 연산을 비결정론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서는 결정론적 튜링 기계와 비결정론적 튜링 기계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먼저 결정론적 튜링 기계는 주어진 일련의 명령들을 한 번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기계를 말한다. 흔히 사용하는 일반적인 컴퓨터들이 이에 속한다. 정렬 문제와 같이 결정론적 튜링 기계가 다항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문제를 P 문제라고 한다. 반면 비결정론적 튜링 기계는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의 답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는 기계, 즉 수많은 경우 중에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기계이다. 최적 경로 찾기 문제를 예로 들면, A에서 B까지 가는 수많은 경로가 있다고 할 때 비결정론적 튜링 기계는 목적지로 가는 모든 경로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하고 가장 빨리 도착한 경로를 최적 경로로 내놓는다. 비결정론적 튜링 기계가 다항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NP 문제라고 한다. NP 문제는 다양한 원인과 요소를 고려해야 하면서도 공식처럼 적용되는 표준화된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 복잡한 문제이며, 앞에서 예로 든 최적 경로 찾기, 수인수분해, 이산로그, 유체 등의 복잡계 분석, 자연어 분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제 앞에서 양자컴퓨터는 연산을 비결정론적으로 처리한다고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될 것이다. 기존의 컴퓨터, 즉 한 번에 하나의 경로만 계산할 수 있는 결정론적 튜링 기계가 NP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경우 문제의 복잡도가 증가함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비결정론적 튜링 기계인 양자컴퓨터는 문제의 복잡도가 증가하여도 시간이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한다. 이것이 바로 양자컴퓨터가 기존의 컴퓨터로 할 수 없는 계산도 척척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까닭이다. 특히 소인수분해와 이산 로그 문제는 공개키 암호 알고리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양자컴퓨터를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암호에 대한 말도 같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양자컴퓨터가 만능이고 모든 면에서 기존 컴퓨터보다 우월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 컴퓨터와 양자컴퓨터는 서로 잘 하는 일이 다르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분명 특정 분야에서는 양자컴퓨터가 매우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연산의 종류에 따라 형편없는 성능을 보일 수도 있다. 즉,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된다 해도 여전히 기존의 컴퓨터들이 필요할 것이다. 결정론적인 형태의 계산 작업에는 기존의 컴퓨터가 계속 이용되고, 기존 컴퓨터가 처리하기 힘든 형태의 복잡한 문제 해결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양자컴퓨터가 활약할 것이다. 양자컴퓨터와 기존 컴퓨터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 관계인 셈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미래에 양자컴퓨터가 어떤 일들을 수행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향후 양자컴퓨터가 활약하기 가장 좋은 분야는 단연 나노 기술과 데이터 분석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나노 기술의 경우, 양자컴퓨터는 입자들의 미시적 운동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 막강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사실 리처드 파인만이 처음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제시한 것도 미시세계의 운동을 분석하기 위해서 슈뢰딩거 방정식에 기반을 둔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통해서였다. 오늘날의 컴퓨터로는 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의 구조나 복잡한 생화학 반응 과정을 예측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예측 정확도도 충분하지 않다. 신약을 개발할 때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만 의존하지 않고 반드시 여러 단계의 동물 실험과 임상 실험을 거쳐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수많은 요인들이 상호 작용하는 생화학 반응 과정을 예측하고, 다양한 분자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이용해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을 가속화하고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신약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가장 큰 이유가 임상 실험 때문인데, 양자컴퓨터를 이용한다면 시뮬레이션의 높은 신뢰성을 바탕으로 임상 실험 단계를 간소화함으로써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응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기간을 몇 주 정도로 극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 분석에도 양자컴퓨터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 중첩을 통해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하고 방대한 데이터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대기의 흐름과 구름의 움직임을 추적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정확한 일기 예보가 가능해지고, 실시간으로 도로 위에 있는 차량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최적 경로를 찾아 줌으로써 자율주행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양자컴퓨터를 산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큐비트의 안정적 구현과 유지, 그리고 양자 오류 보정 방안을 찾아야 한다. 큐비트는 작은 환경 변화로도 쉽게 붕괴하기 때문에 이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있어 큰 숙제이다. 또한 지금의 양자컴퓨터는 양자 오류 때문에 연산 정확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어 이러한 오류를 보정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큐비트 구현을 위해 이온 트랩, 초전도 루프, 위상학 큐비트 등 여러 방식이 연구되고 있으며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양자 알고리즘을 작성하고 양자컴퓨터를 유지, 보수, 구동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양자컴퓨터에서는 구동할 수 없기 때문에 양자컴퓨터에 적합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것이다.

AI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부터이지만, 퍼셉트론과 같이 오늘날 AI의 기초가 되는 기술은 수십 년 전부터 미리 연구되던 것이다. 미래에 양자컴퓨터가 오늘날의 AI와 같이 주목받게 되었을 때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준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양자컴퓨터 기술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5~1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한다. 격차가 더욱 벌어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투자 규모를 더욱 늘려야 하며, 정부 차원의 꾸준하고 일관된 지원을 통해 양자컴퓨터 실증 연구를 수행함과 동시에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산업체, 기초과학 연구원, 정부 정책 결정자 사이에 충분한 정보 교환과 원활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NC 4.0 by the author.

Comments powered by Disqus.